칼리아리 칼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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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아리 칼초 '''
'''Cagliari Calcio '''
'''정식 명칭'''
Cagliari Calcio SpA
''' 별칭 '''
Rossoblu (Red-blues)
Isolani (섬사람들)
Sardi (사르데냐인들)
Castéddu (칼리아리의 사르데냐어 표기)
'''창단'''
1920년
'''소속 리그'''
이탈리아 세리에 A (Serie A)
'''연고지'''
사르데냐칼리아리 (Cagliari)
'''홈 구장'''
사르데냐 아레나 (Sardegna Arena)[1]
(16,233명 수용)
'''구단주'''
톰마소 줄리니 (Tommaso Giulini)
'''감독'''
에우세비오 디프란체스코 (Eusebio Di Francesco)
'''주장'''
주앙 페드루(1992)(João Pedro)
'''공식 웹 사이트'''

'''팬 카페'''

'''우승 기록'''
'''세리에 A'''
(1회)

1969-70
'''세리에 B'''
(1회)

2015-16
'''세리에 C1'''
(3회)

1930-31, 1951-52, 1988-89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나히탄 난데스 (Nahitan Nandez))
(2019년, From CA 보카 주니어스, 1800만 유로)
'''최고 이적료 방출'''
니콜로 바렐라 (Nicolo Barella)
(2020년, To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500만 유로)
1. 개요
2. 구단주
3. 역사
3.1. 1960-1970년대
3.2. 1976-1987년
3.3. 1987-2000년
3.4. 2000년대
3.5. 2013-14 시즌
3.6. 2014-15 시즌
3.7. 2015-16 시즌
3.8. 2016-17 시즌
3.9. 2017-18 시즌
3.10. 2018-19 시즌
3.11. 2019-20 시즌
4. 영구 결번
5. 현재 스쿼드
6. 주요 선수


1. 개요


1920년대에 창단된 축구팀이며 현재는 세리에 A에 속해있다.

2. 구단주


칼리아리의 마시모 첼리뇨 전 회장은 팔레르모의 마우리치오 잠파리니 회장과 함께, 세리에 A 최고의 명물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감독교체가 매우 많은 것으로 유명하며, 연간 3~4회 감독 교체도 드물지 않다. 2005-06 시즌 개막 전에 취임한 아틸리오 테세르를 개막전에서 패배한 직후 해임하고 지난 시즌 지휘를 맡았던 다니엘레 아리고니를 선임하였다. 그러나 다시 경질하였으며, 세 번째 다비데 발라르디니도 성적 부진으로 시즌 중반에 팀을 떠나고 4번째 네도 소네티가 이 시즌을 마쳤다. 2006-07 시즌은 마르코 잠파올로가 개막전에서 지휘봉을 잡았으나 클럽 상층부와 분쟁을 일으켜, 시즌 중반에 해임하였다. 후임 프란코 콜롬바 취임 후 팀이 성적 부진에 빠지자, 마르코 잠파올로을 연임시켜 강등을 면했다. 2007-08 시즌도 마르코 잠파올로가 그대로 계속 지휘를 맡고 했지만 주력을 많이 잃어 초반부터 부진하여 해임된다. 후임으로는 05-06 시즌에 팀을 잔류로 이끈 네도 소네티을 선임하였지만 침체를 계속되자 네도 소네티을 해임하였다. 마르코 잠파올로를 선임하려 했으나 마르코 잠파올로가 거부하였다. 그러므로 클럽은 우선 네도 소네티을 유임하였으나, 또 곧 해임하고 다비데 발라르디니에게 지휘봉을 맡겼고 클럽을 잔류로 이끌었다. 다비데 발라르디니도 그 공적에도 불구하고 유임하지 않고 젊은 마시밀리아노 알레 그리를 초빙하였다. 2011-12 시즌 개막전 2011년 8월 12일 로베르토 도나도니를 해임하고 마시모 피카덴티를 영입했지만, 성적이 부진하자 마시모 피카덴티를 해임하고 다비데 발라르디니를 선임하였으나 부진하자 해임하고, 마시모 피카덴티를 연임시켜 생존에 성공하였다.

3. 역사


창단 후에 많은 시간들을 세리에 C와 세리에 B에서 보냈다.

3.1. 1960-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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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 리바
이후 1964년 세리에 A로 승격하면서 칼리아리의 첫 세리에 A 데뷔 시즌 당시에 스쿼드에는 수비수에는 마리오 마르티라돈나, 미드필더에는 피에를루이지 체라, 네네와 리초티 그레아티 그리고 공격수에는 루이지 리바가 있었다. 칼리아리는 첫 시즌을 안좋게 시작하며 전반기를 단 9점을 획득하며 최하위에 머물렀다. 후반기에는 유벤투스와 AC 밀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등의 놀라운 성적을 거둬 34점으로 7위를 기록했다. 1966-67 시즌에는 칼리아리가 리그의 최고 방어율을 기록하는 동안 루이지 리바는 처음으로 세리에 A 득점왕 자리에 올랐다. 이후 칼리아리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68-69 시즌에 세리에 A 우승을 두고 AC 밀란ACF 피오렌티나와 함께 우승을 다투면서였다. 피오렌티나가 우승을 차지하였지만 다음 시즌에 칼리아리는 궁극적인 영광을 보내게 된다. 안젤로 도멘기니가 팀에 합류하고 칼리아리는 리그에 단 2패와 11골을 실점[2]하며 리그 우승을 거뒀고 루이지 리바는 한번 더 득점왕 자리에 올랐다. 체라, 도멘기니와 리바 같은 선수들은 1970년 FIFA 월드컵에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참가하여 결승전 무대를 밟기도 했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1970년대에 칼리아리의 성적은 중위권으로 추락했고 결국 1975/76 시즌 16개 팀 중 16위 최하위로 강등되었다. 칼리아리의 세리에 A 첫 강등과 함께 리바도 은퇴하였다.

3.2. 1976-1987년


강등 후에 첫 시즌이었던 1976/77 시즌 칼리아리는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패했지만 1978-79 시즌에 세리에 B 준우승으로 3년 만에 세리에 A로 승격하였다. 프란코 셀바지, 마리오 브루녜라[3]와 알베르토 마르케티 같은 선수들은 1982-83시즌에 두 번째로 강등당하기 전까지 팀이 상위권에 있는 4년간 이끌었다. 하지만 세리에 B에서도 하위권에서 머물다가 1986-87 시즌 급기야 세리에 C1으로 강등되어 팀은 암흑기에 빠진다.

3.3. 1987-2000년


칼리아리는 두 시즌을 세리에 C1에서 보냈다. 그중에 한 해는 4부리그인 세리에 C2로 강등을 당할뻔하기도 했다. 1988년에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를 감독으로 선임했고 그는 팀을 각각 세리에 B로 1988-89 시즌 , 세리에 A로 1989-90 시즌에 백투백 승격을 시켜냈다. 세리에 A로 돌아오고 처음 두 시즌은 칼리아리는 14위, 13위를 기록하며 강등권에서 겨우 탈출했다.[4] 1992-93 시즌에는 카를로 마초네의 지휘 아래 6위로 UEFA컵 진출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다음 시즌에는 사르데냐 클럽으로는 전례없는 UEFA 컵 준결승전에 올랐다. 아쉽게도 해당 시즌 UEFA컵 우승팀 인테르에 떨어졌다.[5]
2년을 더 중위권에서 보내다가 1996-97 시즌에 피아첸차에게 플레이오프에 패하여 강등당했다. 한번 더 칼리아리는 단 1년 만에 세리에 A로 돌아왔지만 단 2년만 잔류하였다.

3.4. 2000년대


1999-00 시즌 18개 팀 중 17위로 세리에 B로 강등된 이후 기약없는 2부리그 생활을 하다가 2003년 첼시의 레전드 지안프랑코 졸라가 고향팀인 칼리아리로 왔고 곧바로 그는 나이를 잊어버린 활약으로 13골이나 기록하며 칼리아리를 4년 만에 세리에 A로 올리게 된다. 그리고 2004-05 시즌 세리에 A에서 9골을 넣으며 팀을 12위로 중위권에 위치시키는 데 공헌하고 박수받으면서 은퇴했다.
졸라가 떠난 2005-06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으로 강등권으로 추락하며 감독을 세 번이나 교체하는 혼란을 겪었다. 다행히 후반기 네도 소네티 감독과 스트라이커 다비드 수아소의 활약으로 강등권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2006-07 시즌에도 수아소의 활약 속에 2번의 감독 교체 끝에[6] 17위로 간신히 잔류에 성공했다. 2007-08 시즌에는 공격수 수아소와 키멘티 골키퍼, 핵심 윙어 에스포시토, 란겔라가 한꺼번에 팀을 떠났고 로베르트 아쿠아프레스카, 알레산드로 마트리, 파스콸레 포지아 등 이탈리아에서 이름난 영건으로 이들을 대체하려는 시도를 했다. 2번의 감독 교체 끝에 꼴찌까지 추락했다가 발라르디니 감독 체제에서 겨울 이적시장에서 영입된 골키퍼 마르코 스토라리와 공격수 제다가 중요한 활약을 펼치며 14위로 강등권에서 탈출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발라르디니 감독은 강등에서 팀을 건졌음에도 재계약에 실패하고 하부리그에서만 감독을 맡아왔던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가 신임 감독이 되었다. 개막 후 5경기에서 모두 패하며 강등 1순위로 떠올랐지만 오히려 그 이후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강등권에서 19점이나 먼 9위로 마감했다. 2008-09 시즌의 깜짝 선전 이후에는 첼리노 구단주가 감독을 파리 목숨 취급하면서 어찌어찌 세리에A에서 중위권에 머무는 구단이 되었다.

3.5. 2013-14 시즌


2013년 12월 중순 16경기를 마쳤는데 4승 7무 5패 승점 19점으로 12위를 마크하고 있다. 9승 12무 17패 승점 39점으로 15위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3.6. 2014-15 시즌


2014년 7월 3일 공식 홈페이지에서 무직이었던 즈데넥 제만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한편, 구단주였던 마시모 첼리뇨 구단주는 팀을 매각하고 리즈 유나이티드로 떠났으며, 화학회사 플루오르시드 그룹(Fluorsid Group)의 CEO인 톰마소 지울리니를 새 구단주로 맞았다. 임대로든 돈으로든 24세 이하로 12명을 영입했다. 그와 동시에 라드쟈 나잉골란은 완전이적, 다비데 아스토리는 완전영입을 포함한 임대로 AS 로마로 이적했다.
닥공을 추구하는 제만 감독의 성향답게 골도 많이 넣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실점을 하며.. 하위권에 쭉 머물렀다. 잘 되는 날에는 인테르 원정에서 4:1 대승, 엠폴리와의 홈경기에서 4:0 대승으로 골을 많이 넣고 이기고 나폴리와 3대3 무승부 등 재미있는 경기를 펼치지만 많이 넣는 것보다 승점을 따는 것이 중요한 상황에서 골을 넣어도 골을 먹히고 골을 못넣어도 골을 먹히는 축구를 계속하며 결국 강등권으로 내려갔다.
2014년 12월 23일 16경기에서 승점 12점으로 18위에 그치며 제만이 경질되었다. 후임으로 칼리아리에서 선수 생활의 말년을 보냈던 지안프랑코 졸라 감독이 선임되었다. 부임하자마자 팔레르모 원정에서 5:0으로 깨지지만 강등권 동지인 체세나에게 2:1 승리를 거두었다고 4경기에서 2승1무1패로 반등하는 듯 했다. 그러나 6경기 1무5패를 기록하며 성적이 더 추락하자 2015년 3월 9일 지안프랑코 졸라마저 경질되었다.
결국 제만이 다시 왔지만 복귀전이었던 엠폴리전 홈경기에서 추가시간 실점으로 1:1 무승부를 기록한 이후 5연패로 오히려 더 상황이 악화되었고 결국 4월 21일 제만은 사퇴하였다. 잔루카 페스타 감독 & 다비드 수아소 수석코치 체제로 잔여 7경기를 치렀는데 피오렌티나 원정에서 3:1로 이기고 유벤투스 원정에서 1:1로 비기는 등 4승1무2패를 기록하며 선전하지만 이미 상황은 많이 늦었고 결국 5월 17일 팔레르모와의 홈경기에서 0:1로 패한 뒤 11년 만의 세리에 B 강등이 확정되었다.
칼리아리에서 1999년부터 16년을 함께 했던 주장 다니엘레 콘티가 은퇴했다. 프란체스코 피사노와 안드레아 코수 역시 정든 팀을 떠났다.

3.7. 2015-16 시즌


은퇴한 콘티 대신 다니엘레 데세나가 주장직을 넘겨받았다. 잔루카 페스타 대신 마시모 라스텔리를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세리에 B에서 FC 크로토네와 양강체제를 형성하며 무난하게 승격길을 밟았고 준우승팀 크로토네에 승점 1점 앞선 25승 8무 9패 승점 83점으로 우승하며 1년 만에 세리에 A로 복귀하였다.

3.8. 2016-17 시즌


포르투갈의 유로 2016 우승 멤버인 브루노 알베스마르코 보리엘로, 아르투르 이오니타, 마우리시오 이슬라, 시모네 파도인, 파나요티스 타흐치디스를 영입하며 스쿼드를 보강했다.
2017년 3월 10일 북한 청소년 대표팀의 한광성을 영입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4월 10일 토리노와의 리그 31라운드 홈경기에서 한광성이 세리에 A 데뷔골을 넣었다.
14승5무19패, 55득점 76실점의 다득점(하위 10팀 중 팀득점 2위)-다실점 축구(최다 실점 3위)로 무난하게 강등걱정 없이 11위로 잔류했다. 와싯의 아들 보리엘로가 16골이나 득점해줬다. 승점 47점 중 36점을 홈에서 기록했다. 그리고 산텔리아 경기장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3.9. 2017-18 시즌


홈구장을 낙후된 산텔리아 경기장을 떠나 신축된 사르데냐 스타디움으로 옮겼다.
안드레아 콘티가 2년 만에 돌아왔다. 네덜란드 국가대표 출신 그레고리 반 더 비엘이 영입되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 팀내 득점 1위였던 보리엘로를 승격팀 SPAL로 떠났다.
개막전과 2라운드 유베와 밀란 원정에서 패한 뒤 3라운드 사르데냐 스타디움 개장 경기에서 크로토네를 1:0으로 이겼다. 4라운드 SPAL 원정에서도 2:0 승리를 거두나 이후 4연패로 추락했다. 결국 승격을 이끌었던 라스텔리 감독이 경질되고 우루과이 국대 경력에 과거 칼리아리 선수였던 디에고 로페스가 신임 감독이 되었다.
보리엘로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7] 우왕좌왕하며 힘겹게 강등권 경쟁을 했고 결국 36라운드에서 18위로 내려가기까지 했지만 마지막 2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최종전에서 잔류에 성공했다.
11승6무21패 33득점 61실점, 최종 순위는 16위였다. 홈에서 승점 21점으로, 원정에서의 승점 18점과 큰 차이가 없었고 득점력 감소와 새집 증후군의 영향으로 홈 강세가 사라지며 강등권 근처에서 시즌을 보냈다.

3.10. 2018-19 시즌


디에고 로페스 감독이 사임하고 롤란도 마란이 새 감독이 되었다. 라그나르 클라반다리오 스르나가 영입되었다.
10승11무17패, 36득점 54실점, 13위로 마감했다. 승점 41점 중 30점을 홈에서 기록하며 홈깡패다운 모습을 보였다.

3.11. 2019-20 시즌


라자 나잉골란이 7년 만에 복귀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전반기 세리에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4. 영구 결번


'''칼리아리 칼초 영구결번'''
'''No.11 루이지 리바'''
'''No.13 다비데 아스토리'''
  • 칼리아리에서만 헌신한 루이지 리바의 등번호 11번은 그를 기리며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 2018년 3월 4일, 심장질환으로 갑작스레 사망한 다비데 아스토리에게 피오렌티나와 칼리아리는 등번호 13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5. 현재 스쿼드




6. 주요 선수


[1] 2017-18시즌부터 홈구장으로 이용 중이다.[2] 지금까지도 유럽 주요 리그를 통틀어 가장 적은 경기당 실점을 기록하고 있다.[3] 1970년대 팀의 전성기에서부터 남아있던 선수다.[4] 18개 팀 체제에서 14위까지가 잔류 마지노선이었다.[5] 여담으로 이 시즌 인테르는 승점 1점 차이로 잔류할 정도로 리그에서는 구단 역사상 최악의 시즌이었다.[6] 마르코 지암파올로 감독이 맡았다가 프랑코 콜롬바로 바뀌었고, 다시 지암파올로로 시즌을 마쳤다.[7] 물론 보리엘로조차 SPAL에서 15경기 1골로 폭망했다.